예수님의 초대

우리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단지 말 뿐만이 아닌 진정한 기도와 찬송을 부르는 삶이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다. 우리의 삶을 위해서!

7/5/2006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초대는 하나님 아버지, 그의 아들과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다. 준비된 신부가 그녀의 아름다운 신랑인 예수님(요한복음 13-15, 에베소서 2-5, 요한계시록 19:7)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성경에 나오는 삶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있다. 나와 함께 하고 내가 진정으로 누구인가를 안다면, 나와 비교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너는 나로 인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나처럼 너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른 일들이 너를 괴롭힌다 하더라도, 시간을 갖고 나와 함께 걸어간다면 인생이 어떠한 것인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축복의 결혼식을 올릴 것이다!”

“그러므로, 준비하고 기다려라, 신부여.”

오래전부터 예수의 이러한 초대에 사람들은 그를 찾으러 모여들었다. 예수의 초대는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의 초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 초대는 외적인 교리 문제가 아니다. 이는 우리 마음 속에 존재하고 있는 마음가짐이다. “예수님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인지 몰라. 예수님이 없으면 살 수 없어! 예수님 없이 살고 싶지 않아! 예수님이 뜻하신 목적을 따르는 것 이외의 나의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어.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던지 나는 그를 따르는 양이 될거야. 예수님이 내 인생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바가 있다면, 나도 그걸 따를거야. 예수님은 나의 일용한 양식이고 영양의 공급자이시지. 예수님은 지도자이시고 친절과 자비, 그리고 용서를 베푸는 분이시다. 늘 예수님의 뜻을 따르며 살거야. 예수님의 힘을 느끼고 싶고, 예수님의 강함을 보고 싶다. 예수님의 자비를 느끼고 싶다. 예수님의 사랑과 열정을 느끼고 싶다. 글로만 쓰여진 예수님의 말씀이 아닌 실제로 펼쳐지는 예수님의 지혜를 보고 싶어. 그리고 예수님과 늘 함께 하고 싶어! 예수님의 말씀 하나하나를 듣고 싶어. 예수님으로부터 내 인생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걸 원하지 않아. 나의 이기적인 자만심과 게으름이나 못된 마음이 예수님을 아프게 할까봐 조심스러워. 예수님을 배신할 수 없어. 유혹은 늘 있지만 그 아픔은 너무나 클 것임을 알고 있어.”

예수님은 그 모든 점을 지니고 계신다. 글로 쓰여진 말씀 이외에도 예수님은 예수님의 지혜와 수만가지의 다른 방법으로 우리를 일깨워주고 계신다. 그 분이 바로 우리의 주인이시다. 이런 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이신 것이다. 이는 단순히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어떤 신이 지구를 창조하고 나서 크고 하얀 왕관을 쓴 채 앉아있다는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과 우리를 이끄는 그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그냥 보기만 한다면, 우리가 그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다면,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고서는 못 견디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예수님의 완전하시고 자비로운 손에 우리 자신을 완전히 맡기지 못하는 불완전한 의지이다. 예수님의 신뢰는 우리의 믿음과는 비교할 수도 없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예수님께 맡기지 못하거나 믿지 못하고 겉돌며, 이기적으로 행동한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더 알고 이해하고 예수님의 은혜를 느낄 틈을 자기 자신에게 주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알게 될 기회를 가진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한 놀라운 방법으로 그의 존재를 일깨워 주신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저 놀라울 뿐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걸 물리치고 그만을 좇아갈 수 있도록 하는 힘을 가지고 계신다. 어느 순간 갑자기 당신은 늘상 경험했던 것으로부터 벗어나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게 바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걸으며 예수님의 친절함과 자비, 그리고 변치않는 용서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은 예수님의 웃음을 보고 예수님의 눈에서 섬광과 같은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예수님의 머리가 어떻게 바람에 날리는지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세계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그 곳에서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요한계시록 1:12-18). 당신은 예수님의 힘과 예수님의 담대함을 보게 될 것이다. 또한 예수님이 어떻게 죄를 정죄하시는 가를 보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진리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길에 대한 비전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웃음을 듣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예수님의 따뜻함도 깨닫게 될 것이다.

여기 와서 예수님을 따르라. 예수님은 당신에게 예수님의 지도력과 힘을 보여주실 것이다. 또한 예수님은 당신에게 놀라운 행동과 능력을 보여주실 것이며 이를 보고 당신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안전하고 안정적인 것인가를 느끼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당신에게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 주실 것이다. 모든 괴로운 일을 예수님 손에 맡기게 되면, 예수님은 당신을 씻기고, 정결케 하며, 성령의 힘을 당신에게 불어넣어 주실 것이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수많은 다이아몬드와 루비, 그리고 다른 보석들을 꺼내 당신에게 보여주고 당신에게 걸어줄 것이다. 예수님은 당신을 여왕으로, 또는 왕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예수님은 군대와 같은 많은 무리가 자신을 따라와주기를 바라고 계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어떠한 이론상의 문제이거나 논리적이거나 교리상의 문제는 아니다. “나를 따르지 않으면 지옥에 가게 될 것이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는 예수님이 열두 제자에게 다가와 보여주었던 행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수많은 곳에서 몰려와 예수님을 따랐던 모든 제자들이 단지 예수님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자신을 따라오라고 손짓하다가 따라오지 않으면 지옥에 갈 것이라고 말해서 따라갔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그러한 내용을 담은 어떠한 성경 내용이 있었던가? 이러한 모습이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 매일 밤낮으로 기도했던 내용이던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아버지, 내가 말하는 바가 이루어지도록 해주십시오,”라고 한 뒤, “거기 12명, 나를 따르지 않으면 지옥에 가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 내용이던가? 그렇지 않다. 그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어떠한 모습을 보고 그 놀라운 모습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지혜와 긍휼함과 인내를 보았다. 이들은 강한 지도력과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한 예수님의 능력을 보았다. 그들은 또한 자신의 인생을 바치는 예수님의 용기있는 모습을 보았고, 자애로운 미소를 그의 얼굴에서, 용기를 그의 눈에서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과 모든 걸 함께하고자 했다. 이 모든 것이 다 이들의 의지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이들은 다른 곳으로 가려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함께 하는 일 이외에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태복음. 4:19-22, 요한복음 6:68, 사도행전 5:20, 사도행전 3:19-20).

예수님은 이들을 위협할 필요도 없었고, 위협하지도 않았다.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을 볼 수 있게끔 우리를 초대하셨을 뿐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예수님의 옆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말이다. 나도 자라면 예수님처럼 되고 싶다. 진정으로 그렇게 되고 싶다, 이렇게 말이다.

아주 오래 전 부터, 예수님은 그의 신부를 위해 다시 돌아올 준비를 하고 계셨다. 그리고 우리를 위한 하나님 아버지의 목적은 신부로 입장을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실제로 신부가 될 자격을 갖추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그저 하나님의 성전에 머무는 것이 아닌 하나님 성전의 주인이 되는 것과 같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해 놓은 뜻은 성전을 따르는 주인이 되는 것이지, 하나님의 소유물이 되라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목적은 세계와 이 세상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성전에 거하라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누가복음 17장에서 하나님의 왕국은 어느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마음 속에 거하는 장소, 즉 세상 어떤 것도 필요없고, 속세의 욕망이나 야망이 존재하지 않는 장소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8장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반드시 우리 마음 속에 예수님이 들어오실 자리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몸과 성전의 밑바탕이 되는 교회의 본질인 것이다.

예수님은 단지 우리의 죄를 정죄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게 아니라 우리에게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시려고 오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예수님의 삶에 대해 배우고 경험하여 단지 인생을 살다 죽으면 천국에 가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러 오셨다. 성경에서 말한대로,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을 닮기 위해 노력하면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 아래 불멸의 삶을 누릴 수 있다고 하셨다

“구원”을 받는 것만이 이 이야기의 전부가 아니다. 예수님의 탄생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의 탄생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모든 일들의 시작에 불과하다 (골로새서 1:26-29, 갈라디아서. 4:19, 요한복음 7:38).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고, 우리 모두(하나님을 따르는 이들, 예수님의 신부, 하나님의 처소,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가 나사렛 예수의 온전한 영광을 지금 오늘날까지 나타내기를 바라고 계신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목적은 우리 각자가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다.

또한, “숨겨져 있는 보물”을 찾아내는 일은 우리가 일상의 삶을 어떻게 사는가와 관련이 있다. 기독교와 종교에 관한 많은 부분은 수년간 우리에게 예수님과 예수님의 교회가 어떠한 모습을 갖추었는지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지금은 이제 우리가 지금까지 배운 내용을 토대로 예수님이 바라시는 교회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가를 알고 그를 이루어내는 것이다 (에베소서 3:10, 마태복음 16:18)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고 우리의 삶을 서로 공유할 때만이 비로소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을 창조해낼 수 있따. 우리는 예수님을 좀 더 잘 알 수 있도록 서로를 돕고 격려함으로서 우리가 짓는 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야 하고, 서로를 더 사랑하고 아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생각하는 것만큼 다른 이들도 아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는 바로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이유이며, 우리가 이렇게 변화할 수 있도록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준비된 신부가 되어 기다리는 신랑인 예수님께 돌아가는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수록 우리 자신도 점점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우리가 이기심과 자만심을 접고 서로를 열린 마음으로 이해한다면 하나님의 성령과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쏟아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를 기다리는 신랑인 예수님께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단지 하나님의 교회에 나가는 목적만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끄는 방향으로 따라가는 이러한 방법이 바로 교회가 나아가야 할 목표이다. 그리고 나서 우리의 가정과 직장, 그리고 교회가 모두 하나가 될 수 있다. 나의 마음에서 여러분의 마음에 벽이 사라지고 나의 가정과 여러분에 가정 사이에 존재하는 벽이 사라질 것이다. 내 마음속의 이기심, 자만심, 나태함, 불신을 몰아내고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나도 다른 이들을 사랑하자. 모든 이들이 이렇게 행동할 때, 그 정도에 따라 예수님은 치유의 기름을 우리에게 부어주시고 교회를 이끌고 아름다운 신부가 되기 위해 애쓰는 우리들을 돌아보실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똑똑하게 만들려고 이 땅에 오신게 아니었다. 우리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단지 말 뿐만이 아닌 진정한 기도와 찬송을 부르는 삶이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다. 우리의 삶을 위해서!

jesuslifetogether.com
한국어 Languages icon
 Share i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