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리더쉽
생활에서 보이는 예수님의 리더쉽
우리의 인생에서 선행되어야 하는 삶의 질에 관한 내용이 고린도전서 12-13장에 나와 있고, 고린도전서 14절에 보면 자유에 관한 내용을 볼 수 있다. 모든 이들을 하나로 묶는 것이 이 문제의 핵심이지, 어떤 방식으로 우리가 모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7/5/2006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고린도전서 12-13장에 나온 것처럼 무엇이 우리 삶의 중심인지를 알지 못하면 매일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12-13장을 읽어야 14장이 이해가 되는 것과 같다. 사실 이러한 마음가짐을 가지지 못하고 일상을 살아가는 것은 어떻게 보면 약간 위험하기까지조차 하다. 우리는 중요한 것을 제외하고 모른체 하며 살아갈 수 없다. 이러한 주제는 우리에게 중요하게 다가온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삶을 역동적으로 느낄 자세가 되어 있는 우리의 모습이어야 하는 것이다. 자신만 생각하고, 예수님과의 연결고리가 끊겨있는 삶을 사는 종교인들을 보면 왜 ‘거룩한 사람’이 주도하는 예배가 자신의 용기를 발판으로 ‘자유’라는 단어를 사용해 죄많은 자신의 모습을 가리교 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우리의 인생에서 선행되어야 하는 삶의 질에 관한 내용이 고린도전서 12-13장에 나와 있고, 고린도전서 14절에 보면 자유에 관한 내용을 볼 수 있다.
사탄이 우리에게 다가와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이며 우리에게 ‘관객’이 되기 보다는 설교를 해야한다고 권할 때 우리는 여태까지 이야기했던 내용을 잘 기억해서 일상 생활에서도 이를 물리칠 수 있어야 한다 (에베소서 3:10). 사도행전 2:42-47, 고린도전서 12장, 히브루서 3:12-14, “수많은 어머니들, 형제 자매들이여.”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이 예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이들을 하나로 묶는 것이 이 문제의 핵심이지, 어떤 방식으로 우리가 모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감정적인 찬양을 한다거나 지식을 전달하거나, 예배 형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의 마음은 비즈니스맨의 마음과 같지 않다. 누가복음 9:23-27, 57-62을 보면 진정한 기독교인의 자세가 나온다. 이는 “나중된 자 더 크게 된다”는 예수님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성령이 이끄셨다’는 미명아래 계획없는 예배를 드린다거나 계획을 따로 해서 드리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한다 해서 그것이 반드시 성령이 역사하는 일이 아닌 것과 같다. 거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적인 관점을 부여할 때 이러한 일은 자주 일어나는, 예측할 수 있는 일처럼 보이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종교적으로 사는 일과 살아있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현실적으로 사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를 교회로 인도하신 예수님의 뜻에 비하면 우리가 ‘예배’와 ‘예배 구조(종교적인 기관이나 교회)’를 창의적으로 개조하는 일 자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교회를 ‘새롭고 진보하는’ 곳으로 개조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의 삶이 예수님을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으로 가득하기를 원하실 뿐이다. 그렇다. 이러한 생각들이 우리의 예배를 바꿀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맺는 열매일뿐, 우리가 가져야 하는 목적의식은 아니다. 새롭고 변화된 제도나 기술을 만든다던지, 좀 더 개선된 예배구조나 어떻게 사람들이 서로 가깝게 지낼 수 있는가, 또는 비성경적인 내용에서의 ‘공감대 형성’을 통해 자꾸 우리가 해야할 일을 만들어 내는 것은 무의미하다. 실제로 우리가 해야할 일(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일)은 예수님이 우리 마음속에 항상 계실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이를 다른 이들에게도 전파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2) 살아있는, 우리가 찬양하는 왕이 우리 마음속에 살아계시도록 말이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행복한 삶이 될 수 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초인간적인, 천국 같은 삶, 영생의 삶 또는 하나님의 힘과 진리와 삶의 은혜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교회가 될 것이고 여러분의 마음 속이 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최선을 다해 사는 인생과 생명수가 흐르는 강 같은 삶을 약속하셨다. 예수님을 따라사는 이들의 삶은 우리의 눈과 이 세상의 잣대로는 잴 수도 없는 놀라운 기적과 같을 것이다.
주님 안에서 사는 삶이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 가에 집중되어서만은 안된다. 예수님이 천사의 메시지와 함께 이 세상에 가져오신 것은 예수님의 말씀은 절대로 얕지 않고 그 어떤 것보다도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예배”를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게 하기 위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것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예수님은 껍데기만 가득한 예배의 모습을 전하러 오신것도, 어떤 정치적인 운동이나 교회를 더 지으라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다. 교회에 임하는 예수님의 목적을 생각하면 (에베소서 3:10) 이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공공연하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을 공격하고 비방하라고 하신 적이 없다. 단지 이들의 삶을 예수님을 향한 방향으로 바꾸고 예수님을 더 알 수 있는 삶과 지혜를 가지도록 하신 것이다. “영광을 위한 예수님의 종들”이라는 것은 단지 자비만을 베풀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짓고 계시고, 이 교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지옥으로 가는 문을 보지도 못하게 했다. 예수님의 은혜와 권세는, 우리를 사탄의 노예가 되거나 사탄의 유혹에 빠질지도 모르는 수많은 우리의 형제 자매, 가족들을 구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이 변화하고 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왕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새로운 공기를 마시고,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고, 새로운 귀로 소식을 듣고, 새로운 마음으로 느끼고 사랑하는 것이다. ‘예배’를 드리는 것 뿐만 아니라 앞서 말한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삶에 크나큰 변화로 작용할 것이다.
이러한 일을 하는데 용기가 필요하다고 보는가? 이러한 일에 믿음과 순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이렇게 살기 시작하면 당신의 삶의 많은 변화가 올거라고 생각하는가? 한번 시작하면 당신은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하나님의 나라에 거하는 이가 될 것이고, 예배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우리 삶에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우리의 영적인 성장중 90%는 서로가 성장하는 모습에서 오는 것이고 나머지 10%만 예배에서 오는 것이다. 그 말은 우리가 지금 당장 다른 이들의 집을 방문하여 예수님의 뜻을 전파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과 식량과 옷가지들을 챙겨 그들의 집으로 가라. 자신의 아이 때문에 화가 난 가정이 있다면 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힘써보라. 어떤 가정에서는 그들이 자부심으로 가득찬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 자만심을 지니지 말라고 이야기해보라. 한 형제에게 이기심을 발견한다면, 그에게 더 이상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말라고 이야기해보라.우리는 단지 눈을 감은 채 다음 예배시간이 올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의 삶을 존중하며 이들의 삶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예비하신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를 도와야 한다. 수많은 어머니들과 형제 자매들이 우리와 함께 있다. 이 내용 역시 히브루서3장뿐 아니라 다른 성경에도 잘 나와있다.
히브루서 3:12-14: “조심하라, 사랑하는 친구여. 당신의 마음이 불신과 사탄으로 가득차 살아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당신의 마음이 멀어지지 않도록 하라. 반드시 서로를 주의하고 용기를 주며 서로를 독려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오늘이 있는 한 하나님의 자녀로 죄에 굴복당하거나 죄의 노예가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끝까지 믿음의 자녀로 남아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이다.”
성경이 말한 부분을 보라.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위대하신 하나님이 여러분과 나에게 매일 우리가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해야하는 지를 알려주고 계신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매일 존재해야 한다. ‘성령’은 우리에게 매일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매주 일요일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매주 수요일 일요일만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예배만 언급된 것도 아니었다. 가능한한 진실의 각도에서 서로의 삶을 바라보고 서로의 마음을 열어 자신의 잘못된 생활태도나 이기심, 자만심, 또는 삶의 방식들을 서로 조명해 나가고 고쳐나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기가 점점 더 힘들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옳지 않은 일을 하면서 스스로는 자신이 하는 일이 다 옳다고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이 부분은 성경에 자세히 나와있다. 하나님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잘못된 행동을 멈추지 않으면, 자기 자신이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매일 내가 만약 내 형제와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난 점점 무뎌질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매일 성경을 읽어’, ‘나는 기도를 매일 하지!’, ‘내 부인은 그리스도인이고 난 그녀를 매일 만나!’라는 식으로 자신을 정당화시킬지도 모른다. 이는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다.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할 수는 있지만 다른 이들의 삶에 매일 관여할 수 는 없다. 당신은 점점 더 무뎌질 것이고 더욱 더 자기 자신을 기만하게 될 것이다. 히브루서 3:12-14장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성경의 내용을 믿는가? 하나님을 믿는가?
누가 성경을 썼는가?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서로가 어떻게 연관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만약 내가 이기적으로 군다면, 당신은 나에게 다가와 “형제여, 이기적이어서는 안된다. 그게 예수님을 슬프게 한다.” 라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자만심에 들떠 있으면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게 아니라고 내게 다가와 말할 수 있다. 난 하나님이 반대하시는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나를 도와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내 자신이 하는 일을 늘 내가 눈여겨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다. ‘매일 서로의 삶을 돌아보아 그 누구도 무뎌지거나 자신을 기만하지 않도록 해야한다.’ 이렇이 바로 중요한 우리의 삶의 과제이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받은 은사를 얻는 방법 중에 하나이고, 예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이며, 하나님의 모습을 우리 안에 들어내게 하는 일이다.
늘 성경을 가까이하며 그 안에 들어있는 진실을 이해하려 힘쓴다면 앞으로 2년 후에 당신은 당신이 얼마나 예수님에게 가까이 다가가 있는지를 보고 놀랄 것이다. 서로를 매일 존중하라. 서로의 아이들과 결혼 생활과 직장 생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라. 가서 보고, 자신만의 편안한 자리에서 빠져나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일을 해보라. 그렇다, 난 당신을 보고 말하는 것이다! :) 예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서로의 삶에 불어넣어주라. 사랑하고, 현명한 방법으로 매일 서로를 일깨워줄 수 있는 방법으로 도와주어라. “서로가 하나 될 때, 모든 이들은 자신의 찬양과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나중에 구원을 받은 자가 있으면 구원받지 못한 먼저 된자가 고개를 숙여야 한다. 이러한 점을 계속해서 찾게 될수록 당신은 예수님을 잘 믿는 크리스찬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사실은 생각했던 것보다 그다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또한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사실은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하고 지혜롭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벙법은 늘 잘못된 점과 거짓을 가려내시고, 약한자를 강하게 만드신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어떤 부자들이 당신에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이들도 예수님을 알게 하라. 이제 당신은 실질적인 그리스도인은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진정한 리더쉽이 무엇인지도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의 삶을 매일 살아가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서로를 성장하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서로가 예수님을 더욱더 사랑하고 가까이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곳에 와서 우리의 왕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다.
성경은 100%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는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제자들이 하나님을 배워나가면서 무엇을 깨달았는지 무엇을 경험했는지를 우리에게 말해준다.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배워나갈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들이 했던 것처럼 행동하려고 애쓸 수도 있다. 우리의 삶도 매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으로 채워나가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이야기에서 배울 점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도 그들이 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수도 있다. 세상에서 배우는 인생은 하나님을 알게 되어 배우는 인생과는 비교도 할 수없다. 우리가 알고자 하는 심오한 일들은 우리가 단순히 글만 읽어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공부를 하게 될 때 예수님은 비로소 그에 대한 답을 주시고, 세상의 성경공부와는 다른, 모든 이들의 성경에 나와 있는 진실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가도록 하신다. 교회의 기반과 기둥은 진실이다. 우리 삶의 등불은 우리가 교회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이다.
인생은 학교에서 무언 가를 배우고 지식을 얻어 시험을 치는 것과는 다르다. 그 대신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 우리를 하나님의 모습으로 창조하셨고 우리 곁에 오셨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더욱더 가깝게 소통하고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하게 하셨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서로 공유해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느끼는 바도 그대로 공유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가 느꼈던 것을 실제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제자들이 겪었던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하게 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에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 여행을 통해 우리의 약점과 강점을 배우고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돕는 법을 배우며 우리의 메시야, 우리의 희망을 보는 법을 배운다. 우리는 늘 앞으로 나아가며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서로를 더욱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만약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이 원하시는 대로 나아고자 한다면, 지옥으로 가는 문으로 다가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당신이 지은 죄도 모두 정죄될 것이고 약함과 고통도 모두 치유될 것이다. 모든 죄가 사해질 것이다. 당신의 친절함이 널리 퍼져나갈 것이다.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당신이 절대 상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방법으로 새로 치유되거나 회복될 것이다. 우주에 빛나는 별처럼 당신은 빛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선하심을 얼굴에 보이게 될 것이다. 신부와 교회의 모습처럼 예수님이 오시기를, 신랑이 오시기만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이해가 가는가? 아멘!